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번
3점삼국·가야백제, 도읍지 변천
(가)~(다) 지역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도읍지를 따라가는 답사 계획서에서 (가)는 풍납동 토성과 석촌동 고분군이 있는 한성(서울), (나)는 공산성과 무령왕릉이 있는 웅진(충남 공주), (다)는 부소산성과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이 있는 사비(충남 부여)로 백제의 수도 변천 과정을 나타낸다.
정답 해설
왕궁리 오층 석탑은 사비(충남 부여)가 아니라 백제 무왕 때 중요하게 경영된 전라북도 익산에 있으므로 (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보기 해설
- ①(가) -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가 도읍으로 삼았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고구려 계통 유이민을 이끌고 남하하여 한강 유역의 한성(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았으므로 옳은 설명이다.
- ②(나) - 문주왕 때 천도한 곳이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으로 개로왕이 전사하고 한성이 함락되자 문주왕이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였으므로 옳은 설명이다.
- ③(나) -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 무덤이 있다.
웅진(공주)의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양나라)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축조되었으므로 옳은 설명이다.
- ④(다) - 왕궁리 오층 석탑이 있다.
왕궁리 오층 석탑은 사비(부여)가 아니라 무왕 때 천도 및 별도 경영을 추진했던 전라북도 익산에 위치하므로 옳지 않다.
- ⑤(다) - 백제 금동 대향로가 출토되었다.
사비(부여) 시기의 대표적 유물인 백제 금동 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으므로 옳은 설명이다.
핵심 정리
- 백제의 도읍 변천: 한성(온조왕) → 웅진(475년, 문주왕) → 사비(538년, 성왕)
- 공주(웅진)의 유적: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 중국 남조 양식의 벽돌무덤)
- 부여(사비)의 유적: 부소산성, 정림사지 오층 석탑, 능산리 고분군, 백제 금동 대향로(능산리 절터)
- 익산의 유적: 백제 무왕과 관련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왕궁리 유적(왕궁리 오층 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