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6번
2점조선 후기조선 후기 경제, 삼포 왜관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의 경제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자료에서 정조가 설치한 화성부, 18세기 영조 때 조엄이 일본에서 들여온 구황작물인 고구마, 전국적으로 보급된 모내기(이앙법) 등의 단서를 통해 제시된 상황이 조선 후기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조선은 전기 세종 때 삼포(부산포, 제포, 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두어 교역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기유약조를 맺고 동래(부산포)의 왜관(초량왜관) 하나만을 개방하여 제한적인 교역을 허용하였다.
보기 해설
- ①염포의 왜관을 통해 일본과 교역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 때 삼포(부산포, 제포, 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여 일본과 교역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왜란 이후 기유약조(1609)를 체결하여 부산포의 왜관(초량왜관)만을 통해 교역하였으므로 옳지 않다.
- ②상평통보를 발행하여 화폐로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전국적으로 유통시켰다.
- ③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 결과 관청에서 필요한 공물을 조달하는 어용 상인인 공인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 ④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조선 후기 의주의 만상, 개성의 송상 등 사상(私商)들이 대청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 ⑤덕대가 물주에게 자금을 받아 광산을 경영하였다.
조선 후기 광산에서는 상업 자본가인 물주에게 자금을 투자받아 광산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노동자를 고용하여 광산을 채굴·운영하는 방식이 확산되었다.
핵심 정리
- 조선 후기 경제: 이앙법 전국 확산, 고구마·감자 등 구황작물 유입, 상평통보 유통, 상품 화폐 경제 발달
- 조선 후기 상업·광업: 대동법에 따른 공인 등장, 사상(만상·송상·내상)의 대외 무역 번성, 물주와 덕대의 분업적 광산 경영
- 대일 교역의 변화: 조선 전기 삼포(부산포·제포·염포) 개항 및 왜관 설치 -> 조선 후기 기유약조 체결 후 부산포(초량왜관)만 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