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3점조선 전기을사사화, 사화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가)는 재위 기간이 짧았던 인종이 병환으로 승하하기 직전 조광조의 벼슬을 회복시키고 현량과를 복설하라고 유언을 남긴 내용이다(1545년). (나)는 부제학 정언각이 양재역에 붙은 붉은 글씨의 벽서를 보고하여 대윤의 잔당과 사림 세력이 대거 화를 입은 양재역 벽서 사건(정미사화, 1547년)에 대한 기록이다.
정답 해설
(가)와 (나) 사이인 1545년 명종 즉위 직후, 왕실 외척인 소윤 윤원형 일파가 대윤 윤임 일파를 반역으로 몰아 숙청한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보기 해설
- ①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예송이 일어났다.
효종과 효종비의 승하 후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예송은 조선 후기 현종 때의 사실이다.
- ②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윤임이 제거되었다.
명종 즉위 직후 외척인 소윤 윤원형 일파와 대윤 윤임 일파의 권력 다툼 끝에 을사사화(1545년)가 일어나 윤임 등이 제거되었다.
- ③세자 책봉 문제를 계기로 정철이 유배되었다.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한 건저의 문제로 서인의 영수인 정철이 유배된 것은 조선 선조 때인 1591년의 사실이다.
- ④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책봉 문제로 환국이 발생하였다.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집권한 기사환국은 조선 후기 숙종 때인 1689년의 사실이다.
- ⑤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김굉필 등이 처형되었다.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면서 김굉필 등 사림과 훈구 세력이 화를 입은 갑자사화는 연산군 때인 1504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인종의 조광조 신원 및 현량과 복설 유언(1545년)
- 을사사화: 외척인 소윤 윤원형의 대윤 윤임 제거(1545년)
- 양재역 벽서 사건: 정미사화로 소윤이 대윤 잔당 숙청(154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