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1번
2점조선 후기정유재란, 회답겸쇄환사
밑줄 그은 '이 전란'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강화 교섭 결렬 이후 일본의 재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점, 흥양 현감 최희량이 작성한 전과 보고서라는 점,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서명이 있다는 점을 통해 밑줄 그은 이 전란이 정유재란(1597)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정유재란 종전 이후 조선은 왜란 당시 끌려간 백성들의 송환과 국교 정상화를 위해 일본 에도 막부에 회답겸쇄환사를 파견하였다.
보기 해설
- ①신숙주가 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저술하였다.
신숙주는 세종 대 일본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성종 대인 1471년에 해동제국기를 편찬하였으므로 전란 이전의 사실이다.
- ②나세 등이 화포를 사용하여 진포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나세와 최무선 등이 화포를 활용하여 왜구를 무찌른 진포 대첩은 고려 말 우왕 대인 1380년에 있었으므로 전란 이전의 사실이다.
- ③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전란 이후 조선은 일본에 끌려간 포로를 데려오고 에도 막부의 강화 요청에 응하기 위해 유정(사명대사)을 비롯한 회답겸쇄환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다.
- ④조선 정부의 교역 제한에 반발하여 사량진 왜변이 일어났다.
사량진 왜변은 삼포왜란 이후 무역량 제한에 불만을 품은 왜인들이 중종 대인 1544년에 일으킨 난이므로 전란 이전의 사실이다.
- ⑤국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임시 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
비변사는 중종 대인 1510년 삼포왜란을 계기로 국방 문제를 논의하는 임시 기구로 처음 설치되었으므로 전란 이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정유재란(1597): 왜란 중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교섭이 결렬되자 일본군이 다시 침략한 전쟁이다.
- 회답겸쇄환사: 왜란 종결 후 일본에 끌려간 포로를 쇄환하고 국서에 회답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이다.
- 기유약조(1609): 광해군 대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체결되어 일본과의 국교가 공식 재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