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8번

1점개항기·대한제국신미양요, 척화비

(가) 사건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8번 문항: (가) 사건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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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③

자료 분석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 광성보 항전 등의 단서를 통해 (가) 사건이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겪은 후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대내외에 확고히 천명하고자 1871년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보기 해설

  • ①
    의궤를 비롯한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에 의해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 ②
    홍경래 등이 난을 일으켜 정주성을 점령하였다.

    1811년 순조 때 서북인에 대한 차별과 가혹한 수탈에 반발하여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 ③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되었다.

    흥선대원군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은 직후 서양 세력과의 화친을 경계하고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다지기 위해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 ④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유역에서 통상을 요구하였다.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 대동강에서 통상을 요구하다 소각된 사건으로, 신미양요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

  • ⑤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1801년 순조 때 일어난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이 베이징의 프랑스 주교에게 서양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핵심 정리

  • 신미양요(1871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였으며,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서 항전하였으나 수자기를 빼앗겼다.
  • 흥선대원군의 대외 정책 전개 과정: 병인박해 및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 -> 병인양요(1866년)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년) -> 신미양요(1871년) -> 척화비 건립(1871년)
  • 척화비 건립(1871년): 신미양요 직후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는 비문을 새겨 전국 각지에 세웠다.
개항기·대한제국신미양요, 척화비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