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0번
2점개항기·대한제국강화도 조약, 조일수호조규
다음 대화가 오갔던 회담 결과 체결된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일본 전권변리대신 구로다 기요타카와 조선 접견대관 신헌이 1875년 발생한 운요호 사건을 언급하며 회담하는 모습으로, 이 회담의 결과 1876년에 체결된 조약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이다.
정답 해설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제7관에는 일본 항해자가 조선의 연해를 자유롭게 측량하도록 허용하는 해안 측량권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기 해설
- ①천주교 포교가 허용되었다.
1886년에 체결된 조불수호통상조약에서 프랑스인의 전교 및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간접적으로 인정되었다.
- ②갑신정변의 영향으로 체결되었다.
갑신정변(1884년)의 결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한성 조약이, 청과 일본 사이에 톈진 조약이 체결되었다.
- ③일본 측의 해안 측량권이 인정되었다.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는 일본의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법권) 등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 ④통신사가 처음 파견되는 계기가 되었다.
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광해군 때 파견되기 시작하였으며,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은 수신사이다.
- ⑤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하였다.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내륙 통상)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서 최초로 규정되었다.
핵심 정리
- 강화도 조약(1876년, 조일수호조규)은 운요호 사건(1875년)을 계기로 체결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다.
- 주요 조항으로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여 청의 간섭을 배제하려 하였으며, 부산 및 2개 항구(원산, 인천) 개항,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영사 재판권)을 인정하였다.
- 조약 체결 이후 개항장 내 일본인 거류지 설정과 일본 화폐 유통을 허용한 조일수호조규 부록, 양곡의 무제한 유출과 무관세를 규정한 조일무역규칙이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