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4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을미의병, 을미사변
다음 상황의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자료에서 대군주 폐하가 외국 공사관(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하여 환궁하지 못하고 있는 점(아관파천), 일본인의 만행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올라가 대군주를 환궁시키고자 한다는 점을 통해 을미의병(1895~1896) 활동 시기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유생들을 중심으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보기 해설
- ①을미사변이 일어났다.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에 분노하여 유생층을 중심으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 ②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1905년 일제의 외교권 강탈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사의병의 배경이다.
- ③용암포 사건이 발생하였다.
1903년 러시아가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를 강제 점령하여 군사 기지화를 시도한 사건으로, 러일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 ④헤이그에 특사가 파견되었다.
1907년 고종이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기 위해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사건이다.
- ⑤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었다.
1907년 정미7조약 체결 이후 단행된 조치로, 해산 군인이 합류한 정미의병의 계기가 되었다.
핵심 정리
- 을미의병(1895):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유생(유인석, 이소응)을 중심으로 봉기함
- 을사의병(1905):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하여 최익현, 민종식, 평민 의병장 신돌석 등이 봉기함
- 정미의병(1907):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났으며, 해산 군인이 합류하여 13도 창의군을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