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4번
2점현대6·25 전쟁, 1·4 후퇴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에서 퇴각하며 한강 임시 교량을 폭파하고 시민들이 피란길에 나섰다는 내용에서 중국군의 공세로 발생한 1951년 1·4 후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제시된 상황인 1·4 후퇴(1951년 1월) 이후,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보기 해설
- ①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6·25 전쟁 정전 협정 체결 이후인 1953년 10월에 체결되었다.
- ②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이 유엔군을 포위하였다.
중국군이 유엔군을 포위하여 큰 피해를 입힌 장진호 전투는 흥남 철수 직전인 1950년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일어났다.
- ③경찰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습격하였다.
경찰의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습격 사건은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6월에 일어났다.
- ④미국의 극동 방위선이 조정된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었다.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애치슨 선언은 6·25 전쟁 발발 전인 1950년 1월에 발표되었다.
- ⑤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5·10 총선거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8년에 실시되었다.
핵심 정리
- 6·25 전쟁 주요 전개 과정: 북한의 남침(1950.6.) → 인천 상륙 작전 및 서울 수복(1950.9.) → 중국군 개입 및 장진호 전투(1950.11.~12.) → 흥남 철수(1950.12.) → 1·4 후퇴(1951.1.) → 정전 협정 체결(1953.7.) →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1953.10.)
- 1·4 후퇴(1951.1.): 중국군의 대규모 공세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내어주고 후퇴한 사건
- 한미 상호 방위 조약(1953.10.): 정전 협정 체결 이후 한국과 미국 간의 상호 방위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맺은 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