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7번
2점조선 후기유득공, 발해고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발해고를 저술하여 인물, 군현, 왕실 계보 등을 정리하였고, 고려 왕씨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고 발해사를 쓰지 않은 점을 탄식하였다는 자료의 내용을 통해 (가) 인물이 유득공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유득공은 정조 때 이덕무, 박제가, 서이수 등과 함께 서얼 출신 규장각 검서관으로 기용되어 규장각의 도서 편찬과 검서 업무를 담당하였다.
보기 해설
- ①규장각의 검서관으로 활동하였다.
정조는 서얼 차별을 완화하고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서이수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하였다.
- ②양명학을 연구해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조선 후기에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강화도에서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이다.
- ③의산문답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였다.
의산문답을 저술하여 지전설을 소개하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한 인물은 홍대용이다.
- ④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북한산비가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여 금석과안록을 저술한 인물은 김정희이다.
- ⑤체질에 따라 치료를 달리하는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고 사람의 체질에 따라 치료하는 사상 의학을 확립한 인물은 이제마이다.
핵심 정리
- 유득공은 발해고를 저술하여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 정조 때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서이수 등 4명의 서얼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었다.
- 고려가 발해사를 편찬하지 않아 발해의 옛 땅을 되찾을 명분을 잃었다고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