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7번
2점고려원 간섭기, 몽골풍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제국공주(제국대장공주), 홀랄대(인후), 겁령구 등의 표현을 통해 고려 후기 충렬왕 대를 비롯한 원 간섭기임을 알 수 있다. 겁령구는 원에서 공주를 따라온 사적인 시종으로, 원 간섭기에 권문세족으로 성장하여 권력과 부를 누렸다.
정답 해설
원 간섭기에는 몽골의 풍습이 크게 확산되어 국왕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머리를 땋는 변발과 몽골식 옷차림인 호복이 널리 유행하였다.
보기 해설
- ①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최충이 문헌공도(9재 학당)를 세워 유학 교육을 진흥한 것은 고려 전기 문종 때의 일이다.
- ②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이 설치되었다.
곡식을 빌려주고 갚게 하는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이 설치된 것은 고려 초기 태조 때의 일이다.
- ③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대각국사 의천이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포섭하여 해동 천태종을 개창한 것은 고려 중기 숙종 때의 일이다.
- ④만적이 개경에서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다.
만적이 노비 신분 해방을 외치며 봉기를 도모한 것은 고려 무신 정권기 최충헌 집권 때의 일이다.
- ⑤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원 간섭기에는 몽골의 풍습인 몽골풍이 유행하여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몽골식 변발과 호복 착용이 널리 퍼졌다.
핵심 정리
- 원 간섭기에는 변발, 호복, 소주, 설렁탕, 만두 등 몽골의 풍습인 몽골풍이 유행하였다.
- 원의 공주를 따라온 겁령구나 부원 세력, 환관, 응방 관리 등이 권문세족으로 성장하였다.
- 공민왕은 반원 자주 정책을 추진하여 몽골풍(변발과 호복)을 폐지하고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