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9번
2점고려후삼국 통일, 견훤, 사심관 제도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제시된 자료는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왕경(금성)을 기습하여 경애왕을 살해한 포석정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신라 왕이 고려 태조에게 원병을 요청한 점, 견훤이 구원병 도착 전에 왕경에 침입한 점, 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다 피습당한 점이 단서이다.
정답 해설
신라 경순왕은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였으며, 왕건은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호족을 통제하게 하였다. 이는 927년에 일어난 견훤의 경주 침입 및 포석정 사건 이후에 전개된 사실이다.
보기 해설
- ①김흠돌이 반란을 도모하였다.
신라 중대 신문왕이 즉위한 직후인 681년에 발생한 진골 귀족의 반란이다.
- ②장문휴가 당의 등주를 공격하였다.
발해 무왕 때인 732년에 장군 장문휴가 수군을 이끌고 당의 산둥반도 등주를 공격하였다.
- ③궁예가 국호를 태봉으로 바꾸었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고쳤다가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 ④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신라 하대 진성여왕 때인 889년에 사벌주(상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이다.
- ⑤경순왕 김부가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되었다.
935년 신라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항복하자 태조 왕건은 그를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경주를 다스리게 하였다.
핵심 정리
- 후백제 견훤의 경주 침입과 경애왕 피살(927)
- 후삼국 통일 과정: 공산 전투(927) → 고창 전투(930) → 신라 경순왕 투항(935) → 일리천 전투 및 후삼국 통일(936)
- 고려 태조의 호족 통제 정책: 사심관 제도(경순왕 김부), 기인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