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0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신미양요, 척화비
다음 대화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미군, 손돌목, 어재연 장군, 광성보 등의 단서를 통해 1871년 일어난 신미양요 당시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신미양요(1871)를 치른 흥선대원군은 외세의 통상 요구를 물리친 뒤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더욱 확고히 하고자 전국 주요 도로와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보기 해설
- ①병인박해가 일어났다.
병인박해는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선교사와 수많은 천주교도를 처형한 사건으로 1866년에 일어났다.
- ②장용영이 창설되었다.
장용영은 조선 후기 정조가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창설한 국왕 친위 부대이다.
- ③척화비가 건립되었다.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친 직후 서양과의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고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 ④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화통도감은 고려 말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핵심 정리
- 신미양요(1871):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을 빌미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였으며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의 전개: 병인박해(1866) - 병인양요(1866)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신미양요(1871) - 척화비 건립(1871)
- 척화비 비문: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