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2점조선 후기기유약조, 회답겸쇄환사

다음 자료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2번 문항: 다음 자료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자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연 뒤 조선에 서계를 바쳐 화친을 청하고 선왕들의 묘를 파헤친 도적들을 잡아 압송해 온 일에 대해 비변사가 사신을 파견하여 회답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선조 40년, 1607)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대신하여 정권을 잡았다는 점, 서계를 바치고 선왕들의 묘를 파헤친 도적들을 잡아 바쳤다는 점, 사신을 보내어 회답한다는 점 등을 통해 왜란 이후 일본과의 국교 재개 교섭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실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과의 국교 재개를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조선 정부는 에도 막부가 먼저 국서를 보낼 것과 왕릉(선릉과 정릉) 도굴범을 체포해 송환할 것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였다. 에도 막부가 이를 수용하여 서계를 바치고 도굴범을 압송하자, 조선은 1607년 여우길 등을 회답겸쇄환사로 파견하여 포로를 데려오고 일본의 정세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교섭을 바탕으로 1609년(광해군 1) 대일 무역 재개를 규정한 기유약조가 체결되었으므로 자료는 기유약조 체결의 배경을 파악하는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다.

보기 해설

  • ①
    삼별초의 이동 경로를 찾아본다.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기 개경 환도에 반발하여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대몽 항쟁을 전개하였다.

  • ②
    위화도 회군의 결과를 알아본다.

    고려 말 이성계와 조민수 등이 요동 정벌 도중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하며 정권을 장악하였다.

  • ③
    영선사 파견의 목적을 조사한다.

    개항기 조선 정부는 청의 근대식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을 배우기 위해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유학생들을 파견하였다.

  • ④
    기유약조 체결의 배경을 파악한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교 재개 요청과 조선의 조건 수용을 거쳐 1609년(광해군 1) 에도 막부와 기유약조를 체결하고 국교와 무역을 재개하였다.

  • ⑤
    삼정이정청 설치의 계기를 분석한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진주 농민 봉기를 비롯한 임술 농민 봉기(1862)가 일어나자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핵심 정리

  • 에도 막부의 국교 재개 요청: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마도 도주를 통해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였다.
  • 강화 조건 수용과 회답겸쇄환사 파견: 조선은 서계 먼저 봉정과 능침 도굴범 압송을 요구하였고, 일본이 이를 이행하자 1607년 여우길 등을 회답겸쇄환사로 파견하였다(사명대사 유정은 앞서 1604년 탐적사로 파견).
  • 기유약조 체결(1609, 광해군 1): 부산포 왜관을 통해 교역을 재개하고, 세견선 20척과 세삼두미 100석 등으로 제한하였다.

검수 중 · [교차 검증 2회 반려] [keyPoints[2]] 기유약조를 통해 조선이 일본에 지급하기로 한 쌀과 콩의 명칭인 '세사미두(歲賜米豆)'가 '세삼두미'로 잘못 표기되어 있습니다. → 기유약조의 내용 중 '세삼두미 100석'을 '세사미두 100석'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조선 후기기유약조, 회답겸쇄환사AI 초안 · 검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