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8번
1점남북국발해, 해동성국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당의 빈공과 합격자 서열을 두고 신라 최언위와 다툰 오소도의 아들 오광찬, 당에 사신으로 가서 조회 자리의 서열을 신라보다 높여달라고 요청한 왕자 대봉예 등의 기록을 통해 (가) 국가는 발해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발해는 9세기 선왕 때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당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보기 해설
- ①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고도 불렸다.
발해는 9세기 선왕 때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여 최대 영토를 확보하였으며, 당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는 뜻인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 ②국경 지역인 양계에 병마사를 보냈다.
고려에 대한 설명이다. 고려는 국경 방어 지역인 북계와 동계의 양계에 군사 행정관인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 ③수덕만세, 정개 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에 대한 설명이다. 궁예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변경하며 무태, 성책, 수덕만세, 정개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 ④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를 마련하였다.
신라에 대한 설명이다. 신라는 왕족과 귀족의 혈통에 따라 관등 승진과 일상생활을 엄격히 규제하는 골품제를 운영하였다.
- ⑤정사암에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였다.
백제에 대한 설명이다. 백제는 귀족들이 바위 위에 모여 투표로 재상을 선출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정사암 회의를 열었다.
핵심 정리
- 발해는 9세기 전반 선왕 때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 신라와 발해는 당의 빈공과 등제 서열과 조회 서열을 두고 외교적 경쟁인 쟁장 사건을 벌였다.
- 발해는 인안(무왕), 대흥과 보력(문왕), 건흥(선왕)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