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5번
1점개항기·대한제국국채 보상 운동, 대한매일신보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제시된 자료의 국채보상기성회취지서, 대구 등 여러 지역에서의 단연(금연) 논의와 의연금 납부, 나라 빚 1,300만 원 상환을 위한 차관 갚기 운동 등의 단서를 통해 밑줄 그은 이 운동이 1907년에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국채 보상 운동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의 적극적인 보도와 모금 지원에 힘입어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구국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보기 해설
- ①대한 천일 은행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 천일 은행은 1899년에 황실 자본과 상인들의 주도로 설립된 민족계 은행으로, 1907년에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과는 관련이 없다.
- ②대한매일신보 등의 지원을 받아 확산되었다.
국채 보상 운동은 베델과 양기탁이 이끈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하여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언론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모금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 ③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 활동을 주도하였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 활동을 주도한 것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다.
- ④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였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전개된 것은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 운동이다.
- ⑤자작회,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의 단체가 참여하였다.
자작회,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의 단체가 참여한 것은 1920년대 초반에 일어난 물산 장려 운동이다.
핵심 정리
-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등의 발의로 국채 보상 운동 시작
- 일본 차관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금연, 금주, 패물 모으기 등 전개
-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언론사의 적극적인 모금 운동 지원
- 통감부의 방해와 탄압(양기탁 구속 등)으로 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