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3번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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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분석
제시문에서 내부대신이 단발을 편한 대로 하도록 허락하였으니 의병을 일으킬 명분이 없다고 하며, 칙사가 도착하면 무기를 놓고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는 아관파천(1896년 2월) 직후 고종이 단발령을 철회하고 선유사를 파견하여 을미의병을 해산시키려 한 상황(1896년)을 가리킨다.
정답 해설
을미사변(1895년)과 단발령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은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 직후 단발령을 철회하고 해산 조칙을 내리자 대부분 자진 해산하였다. 따라서 이 상황이 나타난 시기는 을미사변(1895년)과 을사늑약(1905년) 사이인 (라)이다.
보기 해설
- ①(가)
(가)는 고종 즉위(1863년)부터 신미양요(1871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년) 등이 일어났다.
- ②(나)
(나)는 신미양요(1871년)부터 갑신정변(1884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강화도 조약 체결(1876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1882년), 임오군란(1882년) 등이 일어났다.
- ③(다)
(다)는 갑신정변(1884년)부터 을미사변(1895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거문도 사건(1885~1887년), 조·프 수호 통상 조약 체결(1886년), 동학 농민 운동(1894년), 제1·2차 갑오개혁(1894~1895년) 등이 일어났다.
- ④(라)
(라)는 을미사변(1895년)부터 을사늑약(1905년) 사이의 시기이다. 아관파천(1896년) 직후 단발령 철회와 함께 을미의병 해산 권고가 내려진 것은 1896년이므로 (라) 시기에 해당한다.
- ⑤(마)
(마)는 을사늑약(1905년)부터 국권 피탈(1910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을사의병(1905년), 정미의병(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1907년), 국채보상운동(1907년) 등이 일어났다.
핵심 정리
- 을미의병(1895~1896):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에 반발하여 유인석, 이소응 등 유생층을 중심으로 봉기하였다.
- 을미의병의 해산: 아관파천(1896년) 이후 단발령이 철회되고 고종의 해산 조칙과 선유사 파견에 따라 대부분 자진 해산하였다.
- 개항기 주요 사건 연표: 갑신정변(1884년) → 동학 농민 운동(1894년) → 을미사변(1895년) → 아관파천·을미의병 해산(1896년) → 대한제국 수립(1897년) → 을사늑약(19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