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3점조선 후기광해군 중립 외교, 사르후 전투, 정묘호란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가)는 왜적과 7년 동안 대치하다가 왜적이 일시에 도망쳤다는 이산해의 발언을 통해 1598년(선조 31년) 노량 해전을 끝으로 임진왜란이 종결된 직후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나)는 후금과 이미 화친하였으니 강화도에 피란해 있는 국왕이 속히 도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후금 장수의 말을 통해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 때 후금과 형제맹약을 맺고 화약이 성립된 직후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추진하였으나 명의 파병 요구를 피하지 못하고 1619년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군사를 파견하였다. 강홍립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한 것은 1619년으로 (가) 임진왜란 종전(1598년)과 (나) 정묘호란 강화(1627년) 사이에 있었던 사실이다.
보기 해설
- ①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고려 고종 때 몽골의 2차 침입(1232년) 당시 승려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 ②남이 등이 건주위 여진족을 정벌하였다.
조선 세조 때 남이, 강순 등이 건주위 여진족의 추장 이만주를 정벌하였다(1467년).
- ③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격퇴한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의 일로 (가) 이전의 사실이다.
- ④강홍립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광해군 때 명의 원병 요청으로 파견된 강홍립 부대가 1619년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으므로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 ⑤김준룡이 근왕병을 이끌고 광교산에서 항전하였다.
김준룡이 근왕병을 이끌고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을 격퇴한 것은 병자호란 중인 1637년의 일로 (나) 이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임진왜란(1592~1598): 7년간의 왜란 끝에 노량 해전을 계기로 종전
- 광해군의 중립 외교: 명의 원병 요청에 강홍립을 파견하여 사르후 전투 참전(1619)
- 정묘호란(1627): 후금의 침입으로 인조가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며 의병 항쟁 후 후금과 형제맹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