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6번
1점고려고려, 원 간섭기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원의 사신 탑납, 매를 징발하여 원에 바치던 특수 기관인 응방 등의 단서를 통해 고려 후기 원 간섭기(충렬왕 대)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원 간섭기에는 몽골의 풍습이 유입되어 지배층을 중심으로 머리를 깎는 변발과 몽골식 옷차림인 호복이 널리 유행하였다.
보기 해설
- ①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후기에 서얼들이 삼사 등 청요직 진출을 요구하며 집단 상소를 올리는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 ②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정씨 성을 가진 진인이 나타나 새 왕조를 세운다는 정감록은 조선 후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 ③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원 간섭기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널리 퍼졌다.
- ④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등이 봉기하였다.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등이 신분적 차별과 가혹한 수탈에 반발하여 봉기한 것은 무신 정권기이다.
- ⑤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흑창을 처음 설치하였다.
춘대추납의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을 처음 설치한 것은 고려 초기 태조 때이다.
핵심 정리
- 원 간섭기 사회 현상: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 등 몽골풍 유행
- 원의 수탈과 간섭 기구: 매 징발을 위한 응방, 내정 간섭 기구인 정동행성 이문소
- 충렬왕 시기 응방 폐지 시도와 부원 세력의 반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