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번
2점삼국·가야백제, 관등제
밑줄 그은 ‘이 국가’의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마지막 수도가 부여(사비)였다는 점과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좌관대식기 목간이 출토된 사실을 통해 밑줄 그은 이 국가는 백제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백제는 6좌평과 16관등제를 운영하였으며, 1품 좌평 아래 2품 달솔 등의 관등을 두었다.
보기 해설
- ①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서옥제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혼인 풍습이다.
- ②수도에 서시와 남시를 설치하였다.
수도 금성에 동시에 이어 서시와 남시를 설치한 것은 신라 효소왕 때의 일이다.
- ③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을 제한하였다.
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과 일상생활을 엄격히 규제한 것은 신라의 골품제이다.
- ④6좌평 아래에 달솔 등의 관등이 있었다.
백제는 16관등제를 갖추고 최고 관직인 6좌평 아래에 달솔, 은솔 등의 관등을 두었다.
- ⑤을파소를 등용하고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을파소를 등용하여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는 진대법을 시행한 국가는 고구려이다.
핵심 정리
- 백제의 천도 과정: 한성(한성기) -> 웅진(웅진기) -> 사비(사비기, 현재의 부여)
- 백제의 통치 조직: 6좌평 16관등제 (좌평, 달솔, 은솔 등)
- 백제 사비기 목간: 부여 쌍북리, 능산리 절터 등에서 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