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1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임오군란, 제물포 조약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피살, 청군의 진압, 청의 추천으로 부임한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 등의 단서를 통해 (가) 사건이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임오군란 당시 일본 공사관이 불타고 일본인들이 피해를 입자, 조선 정부는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지급하고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이 주둔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보기 해설
- ①김옥균 등 개화파가 주도하였다.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가 주도하여 일으킨 사건은 1884년의 갑신정변이다.
- ②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하고 일본인이 피해를 입자,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지불하고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이 주둔하도록 허용하였다.
- ③전개 과정에서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홍범 14조는 1894년 제2차 갑오개혁 추진 과정에서 고종이 종묘에 나아가 발표한 국정 개혁 기본 강령이다.
- ④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는 배경이 되었다.
개화 정책을 총괄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은 임오군란 이전인 1880년에 마련되었다.
- ⑤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여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이다.
핵심 정리
- 임오군란(1882):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와 개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발생
- 임오군란의 수습: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 흥선대원군 청 톈진 압송
- 임오군란의 결과: 청의 내정 간섭 심화(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 마젠창·묄렌도르프 고문 파견), 일본과 제물포 조약 체결(배상금 지급, 공사관 경비병 주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