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8번
1점고려위화도 회군, 요동 정벌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위화도에서 좌·우군도통사가 회군을 요청한 점과 최영이 요동을 협공하고자 한 점 등을 통해 1388년(우왕 14년) 요동 정벌 추진 당시 위화도 회군 직전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위화도 회군은 1388년(우왕 14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공민왕 즉위(1351년)와 고려 멸망(1392년) 사이인 (마)가 옳다.
보기 해설
- ①(가)
강조의 정변(1009년)과 이자겸의 난(1126년) 사이의 시기이다.
- ②(나)
이자겸의 난(1126년)과 처인성 전투(1232년) 사이의 시기이다.
- ③(다)
처인성 전투(1232년)와 삼별초 항쟁 진압(1273년) 사이의 대몽 항쟁 시기이다.
- ④(라)
삼별초 항쟁 진압(1273년)과 공민왕 즉위(1351년) 사이의 원 간섭기 시기이다.
- ⑤(마)
위화도 회군은 1388년에 일어났으므로 공민왕 즉위(1351년)와 고려 멸망(1392년)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핵심 정리
-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반발하여 최영과 우왕이 요동 정벌을 단행함
- 이성계가 4불가론을 내세웠으나 출병하였고 1388년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정권을 장악함
- 위화도 회군 이후 신진 사대부와 이성계 세력은 과전법을 실시(1391년)하고 조선을 건국(1392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