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0번
3점일제강점기암태도 소작 쟁의, 조선 농민 총동맹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전라남도 신안군(당시 무안군)의 섬, 소작인회 대표와 지주 문재철 사이의 화해 조건, 1년여에 걸친 저항 끝에 소작료를 4할로 인하하는 성과 등의 단서를 통해 제시된 사건이 1923년부터 1924년까지 전개된 암태도 소작 쟁의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제시된 사건은 1923년에서 1924년에 걸쳐 일어난 암태도 소작 쟁의이다. 이 사건 이후 농민과 노동 운동의 연대가 강화되어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이 결성되었고, 1927년에는 전문적이고 전국적인 농민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리·결성되었다. 따라서 1924년 이후의 사실로 옳은 설명이다.
보기 해설
- ①양전 사업이 실시되어 지계가 발급되었어요.
대한제국 시기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양전 사업이 실시되고 근대적 토지 소유 증명서인 지계가 발급되었다.
- ②함경도와 황해도에서 방곡령이 선포되었어요.
개항 이후 흉년과 곡물 유출로 쌀값이 폭등하자 함경도와 황해도 등지에서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이 선포되었다.
- ③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어요.
암태도 소작 쟁의 이후 농민 운동이 더욱 조직화되면서 1927년 조선노농총동맹에서 분리된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다.
- ④일본의 토지 침탈에 맞서 농광 회사가 설립되었어요.
1904년 러일 전쟁 중 일제가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자 이에 맞서 보안회가 설립되고 민간에서 농광 회사가 설립되어 개간을 추진하였다.
- ⑤기한 내에 소유지를 신고하게 하는 토지 조사령을 제정하였어요.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한 토지 약탈과 지세 확보를 목적으로 1912년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여 기한부 신고제에 기반한 토지 조사 사업을 추진하였다.
핵심 정리
- 암태도 소작 쟁의(1923~1924): 서태석 중심의 소작인회가 지주 문재철의 고율 소작료에 맞서 단식 투쟁 등을 전개하여 소작료를 7~8할에서 4할로 낮춘 대표적 소작 쟁의이다.
- 1920년대 농민 운동의 조직화: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 결성 이후 1927년 조선 농민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각각 분리 발전하였다.
- 1930년대 농민 운동: 사회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혁명적 농민 조합 중심의 비합법적 항일 정치 투쟁으로 성격이 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