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5번
3점조선 후기신유박해, 황사영 백서 사건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제천 배론성지, 순조 1년(1801년)의 천주교 탄압, 황사영이 베이징 주교에게 보낼 백서를 작성하며 은신했다는 내용을 통해 (가) 사건이 신유박해(1801년)임을 알 수 있다. 정조 사후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노론 벽파)가 남인 시파를 몰아내기 위해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단행하였다.
정답 해설
신유박해 당시 남인 계열 시파 인물들이 대거 탄압을 받아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 등이 처형되었고, 정약용과 정약전 등이 유배형에 처해졌다.
보기 해설
- ①한성 조약이 체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성 조약은 1884년 갑신정변의 결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되었다.
- ②정부의 요청으로 출병한 청군이 진압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또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출병한 청군이 진압하였다.
- ③사태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1862년 진주 농민 봉기(임술 농민 봉기)를 수습하기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 ④이필제가 영해 지역에서 난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학 교조 최제우의 처형 이후 1871년 이필제가 교조 신원을 명분으로 영해에서 난을 일으켰다.
- ⑤전개 과정에서 이승훈, 정약용 등이 연루되어 처벌되었다.
신유박해 당시 이승훈 등이 처형되었으며, 정약용과 정약전 등 남인 인사들이 유배되었다.
핵심 정리
- 신유박해(1801년, 순조 1년):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가 남인 시파를 숙청하기 위해 천주교도를 탄압하였다.
- 황사영 백서 사건: 황사영이 제천 배론성지 토굴에서 베이징 주교에게 서양 군대 파견을 호소하려다 발각되었다.
- 인물 처벌: 이승훈, 정약종, 주문모 신부 등이 처형되었고, 정약용(강진)과 정약전(흑산도) 등이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