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3번
2점개항기·대한제국국채보상운동, 양기탁
(가)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일본에서 들여온 차관을 갚기 위해 일어난 운동의 의연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쓴 양기탁에 대한 판결문 내용을 통해 (가) 운동이 1907년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당시 언론 기관의 적극적인 모금 운동 지원을 받아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보기 해설
- ①대한매일신보의 지원을 받아 확산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양기탁과 베델이 운영한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모금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 ②조선 총독부의 탄압과 방해로 실패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에 전개되었으므로 1910년 국권 피탈 후 설치된 조선 총독부가 아니라 통감부의 방해와 탄압을 받았다.
- ③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요구하였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와 평등을 요구한 것은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조선 형평사의 형평운동이다.
- ④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에서 모금 활동을 주도하였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를 조직하여 모금 활동을 주도한 것은 1920년대 초에 전개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다.
- ⑤일본, 프랑스 등의 노동 단체로부터 격려 전문을 받았다.
일본, 프랑스 등 외국의 노동 단체로부터 격려 전문과 연대 지원을 받은 것은 1929년에 일어난 원산 총파업이다.
핵심 정리
-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서상돈, 김광제 등의 발의로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의 언론사가 모금 운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 일제 통감부는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방해 공작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