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2점조선 후기이괄의 난, 병자호란, 소현 세자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2번 문항: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가)는 역적 이괄이 군사를 일으켜 수도가 함락되자 왕(인조)이 남쪽(공주)으로 피란했다는 기록에서 1624년(인조 2년)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가리킨다. (나)는 청나라 장수 용골대의 뜻을 전하며 심양에 온 지 5년이 된 소현 세자에게 농사를 지어 식량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기록에서, 병자호란 이후 심양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 세자의 억류 생활(1642년)을 가리킨다.

정답 해설

병자호란(1636~1637년) 당시 남한산성에 피란한 조정에서 척화파 김상헌 등은 주화파 최명길 등의 화의 주장에 맞서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병자호란은 1636년에 일어났으므로 이괄의 난(1624년)과 소현 세자의 심양 억류 5년 차(1642년) 사이의 시기에 일어난 사실로서 옳다.

보기 해설

  • ①
    정문부가 길주에서 의병을 이끌었다.

    정문부가 함경도 길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격퇴한 북관대첩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2년에 있었던 사실로 (가) 이전이다.

  • ②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성된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년) 유성룡의 건의로 설치되었으므로 (가) 이전이다.

  • ③
    영창 대군이 사사되고 인목 대비가 유폐되었다.

    광해군 재위 당시 계축옥사(1613년)로 영창 대군이 사사되고 인목 대비가 서궁에 유폐(1618년)되었으므로 (가) 이전이다.

  • ④
    이덕형이 구원병 요청을 위해 명에 청원사로 파견되었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선조 25년) 이덕형이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한 청원사로 파견되었으므로 (가) 이전이다.

  • ⑤
    김상헌 등이 남한산성에서 화의에 반대하여 항전을 주장하였다.

    병자호란(1636~1637년) 당시 척화파 김상헌 등은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의를 배척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하였으므로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핵심 정리

  • 이괄의 난(1624년): 인조반정 논공행상 불만으로 반란 발생 및 인조의 공주 피란
  • 병자호란(1636~1637년): 청의 군신 관계 요구 거부로 발발, 남한산성 항전과 척화론·주화론 대립
  • 삼전도의 굴욕과 소현 세자 심양 억류: 패전 후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이 청의 심양에 인질로 끌려가 억류 생활
조선 후기이괄의 난, 병자호란, 소현 세자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