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8번
2점일제강점기간도 참변, 자유시 참변, 미쓰야 협정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가)는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간도 일대의 한인을 학살한 간도 참변이다. (나)는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한 독립군 부대 간 지휘권 갈등과 러시아 적군의 무장 해제 과정에서 희생된 자유시 참변이다. (다)는 1925년 조선 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와 만주 군벌 장쭤린 사이에 체결된 미쓰야 협정이다.
정답 해설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이후 일제가 간도 참변(가)을 일으켰고, 이에 독립군 부대들이 밀산부에 집결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러시아로 이동하였으나 1921년 자유시 참변(나)을 겪었다. 이후 만주로 돌아와 3부를 조직하자 일제는 만주 군벌과 1925년 미쓰야 협정(다)을 체결하여 탄압하였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가) - (나) - (다)이다.
보기 해설
- ①(가) - (나) - (다)
간도 참변(1920년), 자유시 참변(1921년), 미쓰야 협정(1925년) 순으로 일어났으므로 옳다.
- ②(가) - (다) - (나)
미쓰야 협정(1925년)은 자유시 참변(1921년)보다 뒤에 일어났다.
- ③(나) - (가) - (다)
간도 참변(1920년)이 자유시 참변(1921년)보다 먼저 일어났다.
- ④(나) - (다) - (가)
간도 참변(1920년)이 가장 먼저 일어났고, 미쓰야 협정(1925년)이 가장 나중에 일어났다.
- ⑤(다) - (가) - (나)
미쓰야 협정(1925년)은 간도 참변(1920년)과 자유시 참변(1921년) 이후에 체결되었다.
핵심 정리
- 봉오동·청산리 전투(1920) 승리 이후 일제의 보복으로 간도 참변(1920)이 발생하였다.
- 서일을 총재로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여 러시아로 이동하였으나 자유시 참변(1921)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 만주로 귀환한 독립군이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를 조직하자 일제는 만주 군벌과 미쓰야 협정(1925)을 체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