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3번
1점개항기·대한제국국채보상운동, 대한매일신보
다음 자료에 나타난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외채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영남에서 시작되어 담배를 끊고 의연금을 모았다는 내용을 통해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당시 주요 언론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모금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보기 해설
- ①조선 총독부의 탄압과 방해로 실패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통감부의 탄압과 방해로 좌절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설치된 통치 기구이다.
- ②대한매일신보 등의 지원을 받아 확산되었다.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당시 주요 언론사들이 모금 운동을 적극 홍보하고 지원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③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민족 운동은 1919년에 일어난 3·1 운동이다.
- ④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였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와 평등 대우를 요구하며 전개된 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 운동이다.
- ⑤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에서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 활동을 전개한 것은 1920년대 초에 추진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다.
핵심 정리
-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등의 발기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언론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일제 통감부는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방해와 탄압을 가하여 좌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