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8번
3점일제강점기국민대표회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밑줄 그은 '회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제시된 자료는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의 선언문이다. 2천만 민중의 공의를 지키는 국민적 대해합, 통일적 기관 하에서 대업을 기성하려 한다는 표현 등을 통해 밑줄 그은 회의가 국민대표회의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국민대표회의에서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 조직하자는 창조파와 기존 임시 정부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편하자는 개조파가 대립하였다.
보기 해설
- ①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였다.
국민대표회의에서는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창조파와 기존 임시 정부의 조직을 개편하자는 개조파가 대립하다가 결렬되었다.
- ②대일 선전 성명서를 공표하였다.
대일 선전 성명서는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12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하였다.
- ③삼균주의를 기초로 하는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한 대한민국 건국 강령은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하였다.
- ④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한 것은 1919년 초 신한청년당이며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전권대사로도 임명되었다.
- ⑤지청천을 사령관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였다.
지청천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충칭에서 창설하였다.
핵심 정리
- 국민대표회의(1923): 임시 정부의 진로를 논의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개최
- 창조파(신채호·박용만 등)와 개조파(안창호·여운형 등)의 갈등으로 결렬
- 회의 결렬 이후 임시 정부의 침체와 1925년 국무령 중심 내각책임제 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