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6번
1점현대6·25 전쟁, 임시 수도 부산
밑줄 그은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제시된 자료는 6·25 전쟁 중 중국군(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이다. 자료의 중국군 2백만 명, 적의 진지 및 해설의 중국군의 개입으로 이 전쟁의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이라는 단서를 통해 밑줄 그은 이 전쟁이 6·25 전쟁(1950~1953)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6·25 전쟁 초기 북한군의 남침으로 정부는 대전과 대구를 거쳐 1950년 8월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였다.
보기 해설
- ①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었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애치슨 선언은 6·25 전쟁 발발 전인 1950년 1월에 발표되었다.
- ②부산이 임시 수도로 정해졌다.
6·25 전쟁 중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정부는 1950년 8월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였다.
- ③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맺어졌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6·25 전쟁의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인 1953년 10월에 체결되었다.
- ④푸에블로호 납포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된 사건은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68년 1월에 발생하였다.
- ⑤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신군부 세력이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는 1980년 5월에 설치되었다.
핵심 정리
- 6·25 전쟁의 전개 순서: 애치슨 선언(1950.1.) → 북한 남침 및 6·25 전쟁 발발(1950.6.) → 부산 임시 수도(1950.8.) → 인천 상륙 작전(1950.9.) → 중국군 개입(1950.10.) → 1·4 후퇴(1951.1.) → 정전 협정(1953.7.) → 한미 상호 방위 조약(1953.10.)
- 임시 수도 부산은 1950년 8월부터 1953년 8월 서울 환도 전까지 피란 수도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