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9번
2점개항기·대한제국흥선 대원군,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오페르트 도굴 사건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가)는 익성군(고종)의 입궁과 흥선 대원군 봉작에 대한 내용으로 1863년 고종의 즉위와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작을 가리킨다. (나)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즉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비문이 새겨진 척화비 건립(1871년 신미양요 직후)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어진 자료는 1863년부터 1871년 사이의 시기를 묻고 있다.
정답 해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던 사건은 1868년에 발생하였으므로 (가) 1863년과 (나) 1871년 사이에 일어난 사실로 옳다.
보기 해설
- ①영국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은 1885년의 일로 (나) 이후이다.
- ②일본의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를 공격하여 강화도 조약 체결의 계기가 된 운요호 사건은 1875년의 일로 (나) 이후이다.
- ③러시아가 용암포에 대한 조차를 요구하였다.
러시아가 압록강 어귀의 용암포를 점령하고 조차를 요구한 용암포 사건은 1903년의 일로 (나) 이후이다.
- ④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1868년에 일어났으므로 두 시기 사이에 해당한다.
- ⑤미국이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푸트 공사를 파견하였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1882년) 이후 미국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한 것은 1883년의 일로 (나) 이후이다.
핵심 정리
-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전개 순서는 병인박해 및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 → 병인양요(1866)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신미양요(1871) → 척화비 건립(1871)이다.
- 오페르트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은 서양 세력에 대한 반감과 쇄국 의지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척화비는 신미양요 직후인 1871년 한양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