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2번
2점개항기·대한제국동학 농민 운동, 남접과 북접의 연합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제시된 자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과정을 나타낸 지도이다. 고부 농민 봉기, 황토현 전투, 전주 화약 체결을 거쳐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가)를 지나 공주 우금치 전투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따라서 (가)에는 제2차 농민 봉기 과정에서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 집결하여 연합군을 형성한 사실이 들어간다.
정답 해설
일본군이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자 동학 농민군은 반외세를 기치로 제2차 봉기를 일으켰다. 이때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충청도 논산에서 합류하여 연합군을 편성한 후 공주 우금치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보기 해설
- ①교정청 설치
전주 화약 체결 이후 정부가 자주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전에 해당한다.
- ②전봉준 체포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농민군이 흩어진 이후인 1894년 12월에 순창에서 체포되었다.
- ③13도 창의군 결성
정미의병(1907년) 당시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여 결성된 연합 의병 부대로 1908년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 ④안핵사 이용태 파견
고부 농민 봉기 이후 파견되어 농민을 가혹하게 탄압함으로써 제1차 동학 농민 봉기(백산 봉기)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 ⑤남접과 북접의 연합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맞서 제2차 봉기가 일어났을 때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서 집결하여 연합 부대를 형성하였다.
핵심 정리
- 동학 농민 운동 제1차 봉기는 반봉건을 기치로 내걸고 백산 봉기, 황토현 전투, 황룡촌 전투를 거쳐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 전주 화약 체결 후 농민군은 집강소를 통해 개혁을 추진하였고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여 자주적 개혁을 시도하였다.
-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남접과 북접이 논산에서 연합하여 제2차 봉기(반외세)를 일으켰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