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0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신미양요, 어재연, 척화비
밑줄 그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강화도 광성보, 침입한 미군, 어재연 장군의 지휘 아래 조선군이 결사항전한 곳이라는 내용을 통해 밑줄 그은 이 사건이 1871년에 발생한 신미양요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밑줄 그은 이 사건은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이다. 신미양요는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년) 이후에 발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1871년)되었으므로 (라) 시기에 해당한다.
보기 해설
- ①(가)
홍경래의 난(1811년)과 고종 즉위(1863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삼정이정청 설치의 배경이 된 임술 농민 봉기(1862년) 등이 일어났다.
- ②(나)
고종 즉위(1863년)와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가 시작되어 비변사가 축소 및 폐지되었고 병인박해(1866년)가 발생하였다.
- ③(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과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1866년)가 일어났다.
- ④(라)
신미양요(1871년)는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년) 이후 일어났으며, 미군이 물러난 직후 조선 조정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1871년)하였다.
- ⑤(마)
척화비 건립(1871년)과 강화도 조약 체결(1876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흥선대원군이 하야(1873년)하고 일본이 운요호 사건(1875년)을 일으켰다.
핵심 정리
- 신미양요(1871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을 구실로 침입한 미군에 맞서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하였다.
- 척화비 건립(1871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 흥선대원군 시기 대외 사건 순서: 병인박해 및 병인양요(1866년)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년) → 신미양요 및 척화비 건립(187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