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6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4번

3점고려거란의 침입, 강조의 정변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14번 문항: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왼쪽 자료는 목종이 김치양 일파를 견제하기 위해 강조를 개경으로 소환하는 장면으로 1009년 강조의 정변 직전의 상황이다. 오른쪽 자료는 1019년 강감찬이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퇴한 귀주 대첩 직후 현종이 맞이 연회를 준비시키는 장면이다. 따라서 (가) 시기는 1009년부터 1019년 사이이다.

정답 해설

1010년 거란 성종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였다. 이 거란의 2차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었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하였다가 양규 등의 활약으로 거란군이 퇴각한 후 환도하였다. 이는 1009년과 1019년 사이인 (가) 시기에 일어난 사실이다.

보기 해설

  • ①
    화통도감이 설치되어 화포가 제작되었다.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되어 화포가 제작되었다.

  • ②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66년 권문세족을 억누르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신돈의 주도로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 ③
    거란이 침입하여 왕이 나주까지 피난하였다.

    거란의 2차 침입 때 강조가 패배하고 개경이 함락되자 현종이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하였다.

  • ④
    노비안검법의 실시로 국가 재정이 확충되었다.

    고려 광종 때인 956년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자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 ⑤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 등으로 구성된 별무반이 조직되었다.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윤관의 건의에 따라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별무반이 조직되었다.

핵심 정리

  • 강조의 정변과 거란의 2차 침입(1010년, 양규의 활약 및 현종의 나주 피난)
  •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년, 거란의 3차 침입 격퇴)
  • 거란 격퇴 후 나성과 천리장성 축조
고려거란의 침입, 강조의 정변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