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7번
2점시대 통합노비, 신분제
(가) 신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고려 몽골 침입기 충주산성 전투에서 김윤후가 신분 문서를 불태웠다는 점과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당시 군국기무처에서 관련 법을 폐지하였다는 점에서 (가) 신분이 노비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조선 순조 1년(1801)에 왕실 궁방과 중앙 관서에 예속된 공노비 6만 6천여 명의 노비안을 불태우고 이들을 양인으로 해방하였다.
보기 해설
- ①신라에서 승진에 제한을 받았으며, 득난이라고도 불렸다.
신라 골품제의 6두품에 대한 설명이다. 6두품은 최고 관등이 아찬(6관등)으로 승진이 제한되었으며 득난이라고도 불렸다.
- ②고려 시대에 향, 부곡, 소에 거주하였으며, 과중한 세금을 부담하였다.
고려 시대 특수 행정 구역인 향, 부곡, 소 주민에 대한 설명이다. 신분은 양인이었으나 일반 군현민에 비해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였다.
- ③조선 시대에 봉수, 역졸의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 신량역천에 대한 설명이다. 신분은 양인이었으나 봉수군, 역졸 등 고된 역(칠반천역)을 담당하였다.
- ④조선 후기에 통청 운동으로 청요직 진출을 시도하였다.
조선 후기 중인(서얼 및 기술관)에 대한 설명이다. 이들은 청요직 진출을 허용해 달라는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 ⑤조선 순조 때 궁방과 중앙 관서에 소속된 6만여 명이 해방되었다.
조선 순조 1년(1801)에 궁방과 중앙 관서에 소속된 공노비 6만 6천여 명을 해방하고 노비안을 불태웠다.
핵심 정리
- 노비 문서 소각: 고려 몽골 침입 시 충주성 전투(1253)에서 김윤후가 노비문서를 소각하여 승리 유도
- 공노비 해방: 조선 순조 때(1801) 중앙 관서와 궁방 소속 공노비 6만 6천여 명 해방
- 공사 노비법 혁파: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에서 법적 신분제 및 노비제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