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5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4번

1점일제강점기문화 통치, 3·1 운동

다음 기사가 나오게 된 배경으로 적절한 것은?

34번 문항: 다음 기사가 나오게 된 배경으로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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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①

자료 분석

기사의 총독 임용 범위 확장, 문화적 정치의 기초 확립 등의 내용과 우리 조선인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말풍선을 통해,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가 표방한 1920년대 문화 통치(민족 분열 통치)에 관한 기사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일제는 1919년 3·1 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나자 강압적인 헌병 경찰 통치에 한계를 느끼고, 조선인을 회유하고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이른바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다.

보기 해설

  • ①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일제는 무단 통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기만적인 문화 통치를 표방하게 되었다.

  • ②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이 시행되었다.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사전에 구금하여 탄압하기 위해 1941년에 제정한 법령이다.

  • ③
    브나로드 운동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동아일보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농촌 계몽 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은 1931년에 시작되었다.

  • ④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이 설립되었다.

    조선 노농 총동맹이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립하여 출범한 것은 1927년이다.

  • ⑤
    내선일체를 강조한 황국 신민 서사의 암송이 강요되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에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강요한 정책이다.

핵심 정리

  • 3·1 운동(1919년)을 계기로 일제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식민 통치 방식을 전환하였다.
  • 문화 통치는 문관 총독 임명 가능, 보통경찰제 실시, 한글 신문 발행 허용 등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친일파를 육성하고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기만 통치였다.
  • 브나로드 운동은 1931년 동아일보 주도로 시작되었으며, 조선 노동 총동맹과 농민 총동맹의 분립은 1927년의 일이다.
  •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과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년)은 1930년대 후반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에 해당한다.
일제강점기문화 통치, 3·1 운동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