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6번
2점삼국·가야신라, 골품제
밑줄 그은 '이 제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신라의 인물 설계두가 재주와 공이 있어도 높은 관직에 오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탄하며 당으로 떠나려 하는 대화를 통해, 밑줄 그은 제도가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신라의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관등 승진의 상한선을 엄격히 제한하였기 때문에,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6두품은 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보기 해설
- ①골품제
신라의 폐쇄적인 신분 제도로, 개인의 혈통에 따라 관직 진출의 상한과 일상생활 전반을 규제하였다.
- ②과거제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로, 고려 광종 때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로 처음 도입되었다.
- ③진대법
고구려 고국천왕 때 을파소의 건의로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빈민 구제 제도이다.
- ④기인 제도
고려 태조 때 지방 호족의 자제를 수도인 개경에 머물게 하여 지방 세력을 통제한 인질 제도이다.
핵심 정리
- 신라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신분을 나누고 관직 승진의 상한선과 일상생활을 엄격히 규제하였다.
- 6두품은 최고 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어 신분적 한계를 느끼고 당으로 유학 가거나 개혁을 요구하였다.
- 설계두와 최치원 등은 골품제의 한계를 비판한 대표적인 신라 6두품 출신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