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1번
3점일제강점기치안 유지법, 산미 증식 계획
다음 기사가 보도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신문 기사에서 소년 축구 대회에 치안 유지법을 적용하려 했다는 점과 인물의 말풍선에서 올해 제정된 치안 유지법이라고 언급한 것을 통해 해당 시기가 치안 유지법이 제정된 1925년(1920년대)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일제는 본국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였으므로 1925년 당시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다.
보기 해설
- ①장용영에서 훈련하는 군인
장용영은 조선 후기 정조가 왕권 강화와 국왕 호위를 위해 설치한 군영이다.
- ②군국기무처에서 회의하는 관리
군국기무처는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당시 개혁 정책을 심의하고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 ③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는 총독부 직원
일제는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여 쌀 증산과 수탈을 추진하였으므로 1925년 당시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④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는 민족 운동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는 1945년 8·15 광복 직후 여운형 등을 중심으로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를 위해 조직되었다.
핵심 정리
- 치안 유지법 제정(1925년): 일제가 사회주의 운동과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한 법령이다.
- 산미 증식 계획(1920~1934년): 일본의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선에서 추진된 식량 수탈 정책이다.
- 1920년대 일제의 통치: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면서도 치안 유지법 제정과 경찰력 증강 등으로 탄압을 심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