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3번
2점조선 후기홍경래의 난, 세도 정치
밑줄 그은 ‘봉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홍경래 등이 주도하였다는 점과 관군이 정주성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점을 통해 밑줄 그은 봉기가 1811년(순조 11)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 시기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과 함께 평안도 지역민에 대한 차별 대우가 주요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보기 해설
- ①전개 과정에서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전개 과정에서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다.
- ②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 하의 가혹한 수탈과 서북(평안도) 지역민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 ③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구식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흥선 대원군이 일시적으로 재집권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1882년 임오군란이다.
- ④사태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고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것은 1862년 진주 농민 봉기(임술 농민 봉기)이다.
핵심 정리
- 홍경래의 난(1811): 서북 지역민 차별과 수탈에 반발하여 봉기, 가산에서 시작해 정주성에서 진압됨
- 임술 농민 봉기(1862): 삼정의 문란에 저항하여 진주에서 시작, 안핵사 박규수 파견 및 삼정이정청 설치
- 동학 농민 운동(1894): 전봉준 주도, 전주 화약 체결 후 자치 기구인 집강소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