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9번

1점남북국신라, 최치원

밑줄 그은 '이 인물'로 옳은 것은?

9번 문항: 밑줄 그은 '이 인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호가 고운이라는 점, 당의 빈공과에 합격하고 황소의 난 때 격문(토황소격문)을 쓴 점, 신라로 귀국한 후 진성 여왕에게 개혁안(시무 10여 조)을 올린 점을 통해 밑줄 친 인물이 최치원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자료에서 설명하는 인물은 신라 말기 6두품 출신 유학자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당의 빈공과에 합격하고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귀국 후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보기 해설

  • ①
    강수

    강수는 삼국 통일기 신라의 문장가로, 당에 억류된 김인문의 석방을 요청하는 청방인문표 등의 외교 문서를 작성하였다.

  • ②
    설총

    설총은 신라 중대의 6두품 유학자로,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를 정리하고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바쳤다.

  • ③
    김부식

    김부식은 고려 전기의 유학자이자 문신으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진압하고 인종의 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 ④
    최치원

    최치원은 호가 고운인 신라 말기의 6두품 유학자로, 당의 빈공과에 합격하여 토황소격문을 썼으며 귀국 후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다.

핵심 정리

  • 최치원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토황소격문과 계원필경 등을 남겼다.
  • 신라 귀국 후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골품제의 한계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 강수(외교 문서 작성), 설총(이두 정리, 화왕계)과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6두품 지식인이다.
남북국신라, 최치원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