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9번
3점시대 통합사회 개혁 노력, 최치원, 조광조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신라 말 6두품 출신으로 골품제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최치원,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을 이끈 신돈, 조선 중종 때 훈구 세력의 독점을 막고자 했던 사림 조광조, 1894년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 침탈에 맞선 동학 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등 각 시대 사회 개혁을 추구한 인물들을 정리한 학습지이다.
정답 해설
훈요 10조를 남긴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최치원은 신라 말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므로,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다.
보기 해설
- ①(가) - 훈요 10조를 남겼다.
훈요 10조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대 왕들을 위해 남긴 유훈이다. 최치원은 신라 말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려 개혁을 건의하였다.
- ②(나) - 전민변정도감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승려 신돈은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비를 양인으로 해방하였다.
- ③(다) - 현량과 시행을 주장하였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는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 도학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림 인재를 천거하는 현량과 시행을 추진하였다.
- ④(라) -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지방관의 탐학과 외세의 침탈에 맞서 보국안민을 기치로 내걸고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주도하였다.
핵심 정리
-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신라 말 진성여왕)와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고려) 구별하기
- 공민왕과 신돈의 전민변정도감 운영(권문세족 견제, 노비 해방)
- 조광조의 사림 개혁 정치(현량과 실시, 위훈 삭제, 소학 보급)
- 전봉준의 동학 농민 운동 주도(고부 농민 봉기, 보국안민과 제폭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