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3번
3점개항기·대한제국신미양요, 척화비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그림 속 말풍선의 '미국 군대', '어재연 장군', '광성보' 및 성벽에 걸린 '수(帥)' 자가 적힌 장수 깃발(수자기)을 통해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친 직후인 1871년에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백성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서울과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보기 해설
- ①병인박해가 일어났다.
병인박해는 1866년 흥선대원군 정권이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한 사건으로 신미양요 이전에 일어났다.
- ②척화비가 건립되었다.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1871년)를 겪은 직후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고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 ③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 대동강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다 군민들에 의해 불탄 사건은 1866년에 일어났으며 신미양요의 배경이 되었다.
- ④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은 1868년에 일어났다.
핵심 정리
- 신미양요(1871년): 미국의 강화도 침략, 어재연 장군의 광성보 결사항전, 수자기 탈취
- 척화비 건립(1871년): 신미양요 직후 흥선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건립
- 흥선대원군 시기 주요 대외 사건 순서: 병인박해(1866) →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 → 병인양요(1866)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신미양요(1871) → 척화비 건립(1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