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5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7번

3점조선 후기진주 농민 봉기, 임술농민봉기

밑줄 그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7번 문항: 밑줄 그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자료에서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가혹한 수탈과 명패에 적힌 유계춘이라는 인물을 통해, 밑줄 친 사건이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임술농민봉기)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진주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에 임술농민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안핵사 박규수의 건의를 수용하여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 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보기 해설

  • ①
    남접과 북접이 논산에서 연합하였다.

    1894년 제2차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 집결하여 연합군을 형성하였다.

  • ②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정부는 봉기를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였으며, 농민 불만의 근본 원인인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고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 ③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일어났다.

    1884년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 개화파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킨 갑신정변에 해당한다.

  • ④
    청군에 의해 흥선 대원군이 텐진으로 납치되었다.

    1882년 구식 군인들이 주도한 임오군란 당시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개입한 청군에 의해 흥선 대원군이 청의 텐진으로 압송되었다.

핵심 정리

  • 1862년(철종 13)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탐학에 맞서 몰락 양반 유계춘 등이 진주 농민 봉기를 주도하였다.
  • 진주 농민 봉기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연쇄적으로 일어난 임술농민봉기로 확산되었다.
  •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고 삼정의 문란을 개혁하고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조선 후기진주 농민 봉기, 임술농민봉기교차 검증됨